김녕김씨 족보와 본관 정정에 대한 생각

족보는 집안의 역사입니다.서양의 성경이 가장 오래된 족보 책이라고 알고 있습니다.그런데 족보라는 책이 성경만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합니다.내가 아는 범위로 말씀 드리면, 나무에 글자를 새기거나, 편액을 세는 작업이나 일을 서각이라고 합니다.서각 이 분야에도 족보는 존재합니다. 스승이 누구 제자가 누구 제자의 제자는 누구인지 족보는 한마디로 정통성과 어느 정도 역사성을 증명하는 기록입니다.과거에 왕조가 있었다고 가정하고 봅시다.그러나 기록 문화가 없었다고 가정하고 구전으로만 전해지면서 어느 시기에 어느 나라가 어느 왕조가 이름은 무엇이고 무엇을 했는지 실적과 사람을 증명하기는 불가능하며 몇백년이나 지난 뒤에 자신이 어느 왕조의 한 사람의 자손이라는 것은 증명할 수 없습니다.이런 경우는 믿지 않지만, 전설과 설화만 아니라 공신력도 없습니다.오래 전 일이지만, 외신을 보면 중국에서도 개혁 개방 이후 경제가 좋아지고 먹는 모습이 발전되면서 중국 사람들도 갑자기 족보를 만든다는 것이 유행처럼 번진 적이 있습니다.한국도 중국보다 먼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오늘의 계보 기록에 이름을 올릴 때 대한 인식을 보면 황당한 일이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보면 얘기하는 사람 스스로가 족보란 무슨 뜻이냐고 생각하고 필요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고 종친회라도 문제가 많아 보이는데 족보 제작비를 지불하는 사람의 이름은 들어 족보 제작비를 안 내는 사람은 이름을 올리지 않고 한마디로 회원 명부 같은 기능밖에 없습니다.족보는 모든 사람의 기록을 한눈에 볼 수 있어야 족보의 기능을 수행하는 것입니다.이런 상태에서 대도호를 만드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고 다만 공동체 의식이 많이 남아 있는 이리 향조 기준에서 가승보의 형태로 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이렇게 하면 부피도 작고 적어도 지역 내의 종친의 유대감이 깊어진다고 생각합니다.만약 족보에 이름을 싣지 않도록 하면 곧 종친들의 설득으로 함께 기록한다고 설득하기도 편하다고 생각합니다.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족보 리스트에서 벗어날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나도 족보의 기록을 보고단종사화 이후 실종된 이리고 할아버지의 부모님이 되는 분들의 무덤을 옥천에서 560년 만에 찾았습니다.오늘 호적 제도가 있고 필요 없다고 할 수 있는데.절대로 아닙니다.실제에 있던 한 예를 들어 봅시다.사육 신 베크 정(하크송)김·뭉기 선생님의 단종사화의 여파로 충성들파뿐 아니라 많은 편의 자손이 모두 지고, 본을 바꾸고 살면서 서로 친척인지도 모르고 살아왔습니다.그것이 이제야 족보에 이름을 싣고 본관을 방문했다고 생각하면서 호적의 본관 정정은 하지 않습니다.이유는 귀찮고 돈이 걸리고 지금 내가 살고 있는데 아무 지장도 없으니까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이대로라면 사고가 커지고 큰일 날 뻔 했다.하동에는 김 김 씨의 사당인 중 시조 경 뒤 왕을 모시고 경천 묘가 있는데 이곳을 지키는 진닝 김 씨 영 아츠시 진영 국가들의 김우중 모침네 부모가 있는데 이전 경천 묘를 방문했을 때 하시는 말씀은 내가 김 김 씨 영 아츠시 진영 국가들이라는 사실은 족보에 이름도 싣고 나 자신도 알고 있습니다.다만 단종사화 이후 본관을 경주 김 씨로 쓰고 호적에 경주 김 씨가 돼서 바꿔야 하는데 나이 노년으로 바꿀까 이전 하신 말씀이 있었습니다.

족보는 일가의 역사입니다.서양 성경이 가장 오래된 족보책이라고 알고 있어요.그런데 족보라는 책이 성경뿐만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합니다.제가 아는 범위에서 말씀드리면 나무에 글자를 새기거나 현판을 세는 작업이나 일을 서각이라고 합니다. 서각 이 분야에도 족보는 존재합니다. 스승이 누구이고 제자가 누구이며 제자가 누구인지 족보는 한마디로 정통성과 어느 정도의 역사성을 증명하는 기록입니다.과거에 왕조가 있었다고 가정해 봅시다.그러나 기록문화가 없었다고 가정하고 구전으로만 전해져 언제 어느 시기에 어느 나라가 어느 왕조가 이름은 무엇이고, 무엇을 했는지 업적이나 사람을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수백 년이 지난 후에 자신이 어떤 왕조의 어떤 사람의 후손이라는 것은 증명할 수 없습니다.이런 경우는 믿든 말든 전설이나 설화밖에 되지 않고 공신력도 없습니다.오래전 일이지만 외신을 보면 중국에서도 개혁개방 이후 경제가 좋아지고 먹고사는 모습이 발전하면서 중국 사람들도 갑자기 족보를 만드는 일이 유행처럼 번진 적이 있습니다.한국도 중국보다 먼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오늘날의 족보기록에 이름을 올리는 것에 대한 인식을 보면 황당한 일이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이야기를 하는 사람 스스로 족보가 무슨 뜻인가 싶어 필요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고, 또 종친회에서도 문제가 많아 보이는데 족보제작비를 내는 사람의 이름은 올리고 족보제작비를 내지 않는 사람은 이름을 올리지 않고 한마디로 회원명부와 같은 기능밖에 없습니다.족보는 모든 사람의 기록을 한눈에 볼 수 있어야 족보의 기능을 하는 것입니다.이러한 상태에서 대동보를 만드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며 다만 공동체 의식이 많이 남아 있는 입향조 기준으로 가승보 형태로 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이렇게 하면 부피도 작고 적어도 지역 내 종친의 유대도 깊어질 것 같습니다.만약 족보에 이름을 올리지 않으려면 가까운 종친들이 설득해서 함께 기록하자고 설득하는 것도 편할 것 같습니다.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족보 목록에서 벗어나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저도 족보 기록을 보고 단종사화 이후 실종된 입향조부의 부모님이 되시는 분들의 묘를 옥천에서 560년 만에 발견했습니다. 오늘 호적제도가 있기 때문에 필요 없다고도 할 수 있는데요.절대 아니에요.실제로 있었던 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사육신 백촌 김문기 선생의 단종사화 여파로 충의공파뿐만 아니라 여러 파 후손들이 모두 흩어져 본관을 모두 바꿔 살며 서로 친척인지도 모르고 살아왔습니다.그러다가 이제 와서 족보에 이름을 올리고 본관을 찾았다고 생각하여 호적 본관 정정은 하지 않습니다.이유는 귀찮고 돈이 많이 들어서 지금 내가 살아있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으니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이러다 사고가 커서 큰일 날 뻔 했어요.하동에는 김녕김씨 사당인 중 시조 경순왕을 모시는 경천묘가 있는데 이곳을 지키는 김녕김씨 영돈영공파 김우용 종친이 있는데 예전에 경천묘를 방문했을 때 하시는 말씀은 제가 김녕김씨 영돈영공파라는 사실은 족보에 이름도 올리고 저 자신도 알고 있습니다.다만 단종사화 이후 본관을 경주김씨로 사용해 와서 호적에 경주김씨로 되어 있어서 바꿔야 하는데 나이노년으로 바꾸냐고 예전에 말씀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경순왕 어진 봉행 경천묘 향례의 명맥을 이어가야 합니다 – 경남도민신문 www.gndomin.com

http://www.gn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107120

하동군 청암면 경천묘 향례봉행 – 경남도민신문 www.gndomin.com

http://yeongjunews.co.kr/front/news/view.do?articleId=60608[영주신문] 신라 경순왕손국협상방법과 과정결과에 대한 설화전설지역별 연구 신라 경순왕손국협상방법과 과정결과에 대한 설화전설 지역별 연구 – 영주신문 yeongjunews.co.krhttp://m.hdgunminnews.kr/news/articleView.html?idxno=11339/ 특별기고/하동군 청암면 안에 위치한 하동 경천묘는 경순왕(?~979)의 초상화를 모신 곳으로 1902년에 지어진 건물입니다. 1985년 11월 14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33호 경천묘로 지정되었으나 2018년 12월 20일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 m.hdgunminnews.kr/ 특별기고/하동군 청암면 안에 위치한 하동 경천묘는 경순왕(?~979)의 초상화를 모신 곳으로 1902년에 지어진 건물입니다. 1985년 11월 14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33호 경천묘로 지정되었으나 2018년 12월 20일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 m.hdgunminnews.kr하동 경순왕의 사당인 경천묘를 지키고 있는 김우영 종친이 2019년 2월경 별세했다고 합니다. 가까운 지역에 살고 있는 진주종친회 김현기 회장에게 부탁을 드렸는데, 현재 사당이 경주김씨에게 소유권이 넘어간 것 같습니다.먼저 지금 진주종친회장이신 김종갑 종친에게 연락해서 전 회장님도 종친회장 고문님과 함께 알아보고 계신 중입니다.또 김녕김씨 중앙종친회 김진완씨에게 통보해 어떤 상황인지 알아본다는 것입니다.하동 경순왕의 사당인 경천묘를 지키고 있는 김우영 종친이 2019년 2월경 별세했다고 합니다. 가까운 지역에 살고 있는 진주종친회 김현기 회장에게 부탁을 드렸는데, 현재 사당이 경주김씨에게 소유권이 넘어간 것 같습니다.먼저 지금 진주종친회장이신 김종갑 종친에게 연락해서 전 회장님도 종친회장 고문님과 함께 알아보고 계신 중입니다.또 김녕김씨 중앙종친회 김진완씨에게 통보해 어떤 상황인지 알아본다는 것입니다.